초종은 ‘돌아가시다’라는 의미로 죽음을 맞이하는 절차이다. 다음과 같은 소절차가 있다. 위독하면 평소 거처하던 방으로 옮기는 천거정침(薦居正寢)을 한다. 주변을 조용히 하고 숨이 끊어지면 곡을 어지러이 하는 기절내곡(氣絶乃哭)을 하여 운명한 고인에 대해 슬픔을 표한다. 지금까지 이 절차에 대해 흔히 ‘임종’(臨終)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절차’, ‘고인이 운명하는 것을 옆에서 지키는 일’ 정도로 이해해 왔다. 저승으로 떠나가는 영혼을 부르는 초혼(招魂)인 복(復)을 한다. 예서에는 없지만, 집안에 따라서는 복을 마치면 사잣밥을 차려 대문 앞에 내어 놓기도 한다. 설치철족(楔齒綴足)은 『家禮(가례)』에는 없으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의거하여 보입(補入)한 절차로서 당시 조선 사회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설치철족은 시신을 처리하는 최초 단계로서 일반적으로는 수시(收屍)라고 한다. 입상주(立喪主)라는 소절차는 상중에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절차이다. 상주,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 등이 그 역할이다. 역복불식(易服不食)은 옷을 바꾸어 입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의미로 모든 복인이 관과 겉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신발을 벗는 절차이다. 설전(設奠)은 고인의 영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전을 차려 제사를 올리고, 혼을 위한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는 절차이다. 이를 시사전(始死奠)이라고 한다. 부고(訃告)는 초상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절차이다.
습이란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며, 반함하는 절차로서 시신을 정화하는 절차이다. 습구(濕球)를 버릴 구덩이를 파는 굴감(掘坎), 고인에게 입힐 수의를 진설하는 진습의(陳襲衣), 향탕(香湯)으로 시신을 깨끗이 정화하는 목욕을 하고, 얼음 위에 놓는 설빙을 한다. 이 설빙 절차는 『가례(家禮)』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습(襲)은 수의(壽衣)를 입히는 절차로서 이 때 습전(襲奠)을 차린다. 복인들이 자리를 정하는데, 이를 위위(僞位)라고 한다. 반함은 시신의 입에 쌀과 엽전 혹은 구슬을 물려 입안을 채우는 일이다. 반함을 하는 이유는 차마 입이 비어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맛있고 깨끗한 물건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한다.
운명 한 후 이틀째(운명 다음날)에 하는 일로서 시신을 베로 싸서 묶어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절차이다. 소렴에는 다음과 같은 절차들이 진행된다. 소렴할 옷과 이불을 진설하여 소렴을 준비하는 진소렴의금(陳小斂衣衾)의 절차에서 기물과 옷 등을 준비한다. 준비가 되면 소렴을 하는데, 빈곳을 모두 채워 시신이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이 되게 하여 염포로 싸서 묶는다. 상주들이 시신에 기대어 가슴을 두드리며 곡을 한다. 참최복을 입는 남자는 단(袒)을 하고, 초종에서 풀었던 머리를 삼끈으로 묶는다. 자최복 이하와 5세를 같이 하는 사람(10촌)까지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지만(袒) 괄발이 아니라 면(免)을 한다. 여자 상주들은 북머리를 한다. 그리고 나서 전을 차린다.
소렴에서 염포로 싸서 묶은 시신을 관에 넣는 절차이다. 3일째에 염을 하는 것은 혹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효성 때문이라고 한다. 시신을 관에 넣고, 조발랑을 관의 구석에 넣고 보공(補空)한다. 보공을 하면 관 뚜껑을 닫고 관보로 싸고, 명정을 세운다. 집안에 따라 외빈(外殯)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면담조사에 의하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습과 염을 동시에 진행하여 하루에 마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오복을 입을 사람들이 각기 해당되는 복을 들고 영좌에 나아가 아침 곡을 하고 서로 문상한다. 관행에서는 성복을 한 후에 조전과 상식을 올리기 때문에 이것을 성복제(成服祭)라고도 하지만, 이는 조전임이 명백하다. 오복제도(五服制度)는 참쇠(斬衰), 제쇠(齊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媤麻)가 있다. 여기에 관계를 맺게 된 내용과 근거에 따라 각각 그 경중이 다른 4종류의 복이 있는데, 정복(正服)·가복(加服)·의복(義服)·강복(降服)이 그것이다. 또한 친등관계(親等關係)에 따라 3년·1년·9월·5월·3월의 상복기간이 정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자최 중에서도 지팡이의 유무에 따라 장기(杖朞)·부장기(不杖朞)로 구분될 정도로 복잡하다.
조(弔)란 상주를 위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이에는 영전에 드리는 전(奠)과 부의(賻儀), 그리고 문상 방법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문상을 할 때는 모두 흰옷을 입는다. 조는 절차로서의 의미가 없으나, 성복을 한 후에야 문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복 다음에 하나의 절차로 위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조문은 일제 강점기 이후 일반화 된 용어이다. 일상적인 용어는 “상주 물으러 간다.”는 말이 있듯이 ‘문상(問喪)’이라는 용어가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상주가 멀리서 부고를 들었을 때 하는 행위와 해야 하는 일, 성복하는 일시 등에 관한 절차이다. 절차로서의 의미가 없고 단지 행해야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부고를 듣고 집으로 달려가는 것을 분상(奔喪)이라고 한다. 집에 도착하면 관 앞에서 재배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곡을 한다. 4일이 지나서 성복을 한다. 만약 집이 멀어 갈 수 없을 경우에는 별도의 전을 차려 올리는데, 절은 하지 않는다.
장사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필요한 도구를 제작하는 절차이다. 이 역시 순차적 절차로서의 의미는 약하나 성복을 한 후 문상을 받게 될 정도로 장사할 준비를 마쳤으므로 본격적으로 장사 지낼 일을 준비하기 때문에 여기에 위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절차가 진행된다. 상기(喪期)는 천자는 7월, 제후는 5월, 대부와 선비는 3월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3개월 만에 장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 기간 내에 장사 지낼 땅을 잡아야 한다. 터가 정해지면 조전이나 석전을 올릴 때 고유를 한다. 고유를 하면 묘역을 정리하고 토지신에게 고한 후에 광중(壙中)을 파고, 회격을 한다. 지석은 고인의 공덕을 기록한 표지물로서, 돌이나 도자기로 굽기도 한다. 묘를 분실하였을 때 지석(誌石)이 묘의 주인을 찾아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내용은 고인의 직위, 생년월일, 자식관계, 처가관계, 살아있을 때의 공적 등을 쓴다.
장사 하루 전에 발인을 하기 위해 빈을 하였던 영구를 옮겨 조상에게 인사하는 절차이다. 먼저 영구를 모시고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인사를 하고 청사로 옮긴다. 친척과 손님이 술을 올리고 부의(賻儀)한다. 그리고 발인에 필요한 방상씨(方相氏)·명정(銘旌)·영차(靈車)·대여(大轝)·삽선(翣扇) 등을 순서에 따라 진열해 둔다. 오후 3-5시(일포시:日哺時) 사이에 조전(祖奠)을 올린다. 발인하는 날이 되면 영구를 상여에 싣고 행상(行喪)할 준비를 한다. 영구를 상여에 실으면 견전(遣奠)을 올린다. 축관이 상여에 올라가 분향한다. 부인 등 여자 상주와 집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곡을 하고 재배하여 하직인사를 한다. 이때 존장은 절을 하지 않는다. 예서의 규정과는 달리 관행에서는 견전을 발인제라고 하고, 발인의 첫 번째 절차로 인식한다.
영구를 상여에 싣고 장지로 운반하는 절차이다. 현장에서는 방에서 영구를 내올 때 생기가 맞지 않으면 중상(重喪)이라는 양밥을 행한다. 행상의 순서는 방상씨(方相氏) - 명정(銘旌) - 령여(銘旌) - 만장(輓章) - 功布(공포) - 운불삽(雲黻翣) - 상여(喪轝) - 상주(喪主) - 복인(服人) - 존장(尊長) - 무복친(無服親) - 조객(弔客)의 순서이다. 친척과 빈객이 길가에 장막을 치고 전을 올리는데, 이를 노제(路祭)라고 한다.
영구가 장지에 도착하여 하는 일로써 장사(葬事)를 지내는 일이다. 먼저 영악(靈幄)과 친빈차(親賓次), 부인차(婦人次)를 마련한다. 방상이 장지에 도착하면 창으로 광중의 4 모서리를 찔러 악귀를 물리친다. 영여가 도착하면 축관이 혼백을 악좌(幄座)에 모시고 신주 상자를 혼백 뒤에 안치한다. 영구를 광중에 내리는 절차를 내폄(乃窆)이라고 하는데, 흔히 하관(下棺) 이라고 한다. 하관하면 구의(柩衣)와 명정을 덮는다. 주인이 현훈(검은색 6장과 붉은 색 4장, 각장 8자)을 받들어 관 동쪽에 넣는다. 이어 회격(灰隔)을 하고 성분을 한다. 횡판(橫板)을 놓아 회가 직접 관에 닿지 않도록 한다. 흙을 채울 때는 한 자 정도 채우면 다지고 이를 반복한다. 예서에서는 규정하지 않았지만 이를 회다지 혹은 달공이라고 한다. 이 때 부르는 노래를 회다지노래라고 하는데, 앞소리꾼의 선창에 맞추어 후창을 하면서 회다지를 한다. 그리고 다지기를 하는 층수는 홀수로 하며 많이 할수록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성분이 되면 후토신에게 제사한다. 지석을 묻는다. 성분이 되어가는 동안 악좌에서는 신주에 글씨를 쓰는 제주(題主)를 한다. 제주를 마치면 제주전(題主奠)을 올린다. 이때 “00께서는 형체는 이미 광중으로 돌아가셨으나 혼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신주가 완성되어 모시겠으니 신께서는 옛것을 버리시고 새로운 것에 기대고 의지하소서”라는 내용의 축문을 읽는다. 『가례(家禮)』 에서는 축문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축문을 제시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제주전을 마치면 축관이 신주를 받들어 영좌에 모시고 혼백은 상자 안에 넣어 신주 뒤에 놓는다. 주인이 재배하고 곡을 한다. 집사자가 영좌를 거두어 떠나는데, 자식 중 한 사람이 남아 봉분을 완성할 때까지 지켜보게 한다.
영여에 제주한 신주를 모시고 장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절차이다. 집에 도착하면 부인들이 이들을 맞이한다. 축관이 신주를 영좌에 안치하는데, 혼백상자는 신주 뒤에 둔다. 기년과 구월 복을 입는 사람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잔치를 즐기지는 못한다.
우(虞)는 편안하다는 뜻으로, 우제는 부모의 장사를 지내고 영혼을 맞이하여 편안하게 위안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로 세 번 지낸다.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로 오례(五禮)에서는 흉제(凶祭) 에 속한다. 반드시 장사 당일 지내야 하기 때문에 길이 멀 경우 도중에 여관에서 지내기도 한다. 『가례(家禮)』에는 우제의 종류에 초우제와 재우제(再虞祭), 삼우제(三虞祭)가 있다는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초우제(初虞祭), 재우제(再虞祭), 삼우제(三虞祭)를 소절차로 제시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예서와는 달리 일반적으로는 이를 반혼제(反魂祭)라고도 한다. 우제부터 전(奠)에서 분리되어 제사(祭祀)로 전이되기 때문에 우제는 매우 중요한 제사이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는 사시제와 동일하고, 이때부터는 축관이 아니라 상주가 주인이 되어 제사를 삼헌으로 행한다. 축문을 읽을 때 축관이 서향하여 읽는데 이는 아직까지 우제가 흉례이기 때문이다.
곡을 그치는 의례이다. 삼우제를 지낸 후 강일을 택하여 지낸다. 졸곡제를 지내는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유월장을 할 경우에는 삼우제 다음날에 지내지만, 유월장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3개월 후에 지낸다. 졸곡을 지낸 후부터는 조석곡만 하고 무시 곡은 하지 않는다. 졸곡은 곡을 그친다는 의미, 흉제를 길제로 바꾸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현주를 사용한다. 이때부터는 아침저녁의 조석곡만 하고 그 사이에는 곡을 하지 않는다. 완전히 제사로 전이되었기 때문에 축문을 읽을 때 축관이 주인의 왼쪽에서 동향하여 읽는다. 주인과 형제는 거친 밥에 물을 마시되 나물과 과일은 먹지 못한다. 자리를 깔고 나무를 베고 잔다. 이 때 민간에서는 자리걷이, 혹은 씻김굿, 오구굿 등을 한다. 이즈음에서 문상 온 손님들에게 편지로 보답한다.
고인의 신주를 조상의 곁에 합사(合祀)하도록 하는 절차이다. 『가례(家禮)』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사우례의 규정에 따라 목욕하고 빗질하고 손톱을 깎고 수염을 깎는 조항을 삽입하여 일처리를 쉽게 하고 있다. 부제(祔祭)한다는 것은 함께 모신다는 뜻으로 새로운 신주를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당에는 4대의 신주를 모시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신주를 사당에 모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제를 지내 새로운 신주를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는 것을 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제이다. 신주를 모시지 않는 집안에서는 부제의 절차는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신주가 없는 집안에서는 부제, 담제, 길제의 절차는 생략되는 것이 보통이다.
기년을 맞아 고인을 추모하는 제사로 사망 후 13개월이 되는 날이다. 소상 때에는 연복으로 변복한다. 남자들은 수질을 떼어내고, 여자들은 요질을 떼어 낸다. 이는 남자는 머리가 중요하고, 여자는 허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년복을 입는 사람은 길복을 입으나 울긋불긋한 옷은 입을 수 없다. 변복의 내용은『가례(家禮)』와 차이가 있다.
죽은 후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이다. 초상으로부터 대상까지 윤달을 계산하지 않으면 25개월이 된다. 대상을 지내면 젓갈이나 간장, 포를 먹어도 된다. 상복을 벗기 위해 준비하는 옷은 백립·망건·직령대·백화·비녀·의상·신발 등 평복에 가까운 옷이다. 제사를 마치면 축관이 신주를 모셔 사당에 안치한다. 영좌를 철거하고 지팡이는 부러뜨려 구석진 곳에 버린다. 이른바 탈상(脫喪)이다.
평상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날짜를 따지면 27개월째에 해당한다. 담제에서 입는 옷은黲布笠(참포립)ㆍ網巾(망건)ㆍ黲袍衫(참포삼)ㆍ白布帶(백포대)ㆍ早靴(조화)ㆍ 淡黃피(담황피)ㆍ白大衣(백대의), 그리고 신발을 준비한다. 날이 밝으면 담제를 지내는데, 축문의 내용은 ‘엄급대상’을 ‘엄급담제(奄及禫祭)’로 고치고, ‘애천상사’를 ‘애천담사(哀薦禫祀)’ 로 바꾼다. 『家禮(가례)』에서는 담제로서 상례의 모든 절차를 마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례와는 차이가 있다.
신주의 代를 바꾸고 집의 계승할 종손이 바뀌었음을 공포하는 제사이다. 첫날에는 신주의 분면을 고쳐 쓰는 개제고사(改題告祀)를 지내고, 다음날이면 길제를 지낸다. 주인은 일상의 제복인 吉服(길복)으로, 주부는 원삼 족두리를 한다. 길제는 고인의 사후 27개월 혹은 28개월째에 지내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로서 매우 다양한 기능을 하는 의례로 규정되고 있다. 첫째 망자와 연관된 상례의 최종절차, 둘째 사당에 모신 신주의 대수를 소목계서(昭穆繼序)하는 절차, 셋째 친진(親盡)한 조상신을 성대히 모셔 보내는 의례, 넷째 종손의 지위변화, 즉 새 종손의 탄생의례, 다섯째 상중의 기간에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통과의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길제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로서의 의미는 물론, 한 집안의 새로운 재출발을 의미하는 의례로 자리매김 되는 것 같다. 따라서 길제는 한 家門(가문)의 지도자를 세우는 의례임과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하나의 씨족집단으로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의례로 규정된다.